기술과 정치사회 - 적정 기술과 사치 기술 정치사회



적정 기술(Appropriate Technology)은 기술 수용 주체의 환경 및 인프라 수준에 맞는 기술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선진국에서 미 철 지난 기술이 개발도상국의 기술 수용 환경 및 인프라에 잘 맞기 때문에 인기를 끈다.

당연한 말이지만, 기술 수준에 따라 필요한 관리 노력, 위험성 등은 천차 만별이다.

선진적이고 첨단을 달리는 기술은 숙련된 인력과 대규모 시설, 첨단 장비 등이 필요하고 

특히 막대한 비용이 소모된다.

따라서 관리 인력과 기술, 장비, 자금이 부족한 개발도상국에서는 아무리 좋은 기술도 별 효용이 없다.

차라리 좀 구식이거나 장난감같아도 작은 비용으로 큰 효과를 보이는 기술이

개발도상국에 '적정'하기 때문에 이를 적정 기술이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인간 사회 전체, 전 세계를 기준으로 적정 기술이란 무엇일까?

인류 전체에게 적정한 기술은 어떤 기술인지, 어떤 속성을 갖고 어떤 방향으로 

어떤 속도로 발전해야 하는지, 그리고 그 발전 과정 전체를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지 고민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통제할 수 없는 상황과 부딪힐 수 있다. 

만약 첨단 기술이 인간 고유의 정치 사회적 병폐와 맞물린다면

병폐의 구조화, 시스템화, 고착화를 지지하게끔 변질된다.


인간을 위한 적정 기술은 말 그대로 인간 전체에게 '적정'한 수준의 기술이어야 한다.

적정 기술의 정의를 따른다면, 인간이 갖춘 인프라, 자원, 관리능력을 초월하지 않는 기술과 장비를 의미한다.

그런데 인간이 갖춘 인프라와 관리능력은 비단 기술적이고 물리적인 것 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인간이 자기파괴적 어리석음을 반복하지 않고 기술을 충분히 관리할 수 있는

정신적, 문화적, 사회적 성숙도가 더 중요하다.

이는 적정 기술로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 범위가 물리적 세계에 국한되지 않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개발도상국 물 부족 현상처럼 문제가 단순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전 포스팅에 작성했듯이 인간은 수학, 물리학, 기계 공학 등 인간 행복을 위한 물리적 도구에서

장족의 발전을 이룬 반면, 사회-문화적인 부분에서 발전했다고 확신하기 어렵다.

자본주의 시장경제, 자유 민주주의 체제는 결국 '돈'이라는 물리적 매개와 

'이기심'이라는 불완전하고 취약한 정신적 매개를 사용해 인간의 복잡한 정치-사회-문화적

문제를 풀어보려고 사용한 미봉책에 지나지 않는다.


'돈'을 자유 민주주의 체제의 매개라고 할 때, 불편해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돈' 이상의 숭고한 가치가 있는 것 같은 자유 민주주의는 철저하게 '돈'에 종속된 체제,

'돈'이 없으면 아무것도 돌아가지 않는 체제에 불과하다.

숱하게 많은 빈민국이 '돈' 때문에 자유 민주주의 체제로 출발해 독재 군부 정권의 장기 집권으로 끝나는 경험을 했다.

우리나라 역시 마찬가지이다.

우리나라에 자유 민주주의 체제가 어설프게나마 시작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 시점은 듣기 좋든 싫든 간에 70~80년대 경제부흥기를 거친 후이다.

미국은 넘치는 인적, 물적 자원과 드 넓은 땅덩어리가 있었기 때문에 자유 민주주의를 쉽게 발전시켰다.

메이 플라워호가 도착한 곳이 광활한 신대륙이 아니라 좁고 척박한 땅에 도착했다면

미국이 오늘날과 같이 강대국이 되는 데에는 더 오랜 시간이 걸리거나 그러지 못했을 것이다.

영국과 유럽은 전 세계에 식민지를 두고 온갖 고문과 착취와 강탈을 자행했고

그 후에 대의 민주주의와 과학 기술 발전 토대를 쌓았다.

그들은 결코 민주적 방식으로 식민지 국민들을 대접하지 않았다.

'돈', 다시 말해 아담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 

인간의 이기심을 사회적 균형, 절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이루기 위한 지렛대로 삼으려는

이 꿈이 얼마나 불완전한 것인지는,

특정 이익집단의 목소리를 반영하기 위해 의도된 메세지를 

전달하는 언론과 교과서, 책과 강연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지하기라도 하는 사람이라면 

어느 정도 수긍할 수 있을 것이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와 자유 민주주의는 막스의 공산주의나 다를바 없는 똑같은 실험작에 불과하다.



이렇게 인간이 미성숙하고, 자연과 같은 선순환과 지속가능한 공존에 

별 관심이 없다면, 그리고 인간을 바꾸는 것이 그렇게 어렵다면

최소한 인간이 사용하는 기술이라도 이에 적합한 수준이어야 한다.

좀 다른 측면에서 살펴보면, 

기술이 적정하지 않다고 느끼는 상황들 중 하나는

'"이렇게" 까지 편리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 때이다.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충돌 등 여러 관점에서 해석할 수 있겠지만

오늘날 기술이 단순히 '불편 해소'를 넘어 '지나치게 편리'한 삶을 살 도록 

마케팅 홍수를 통해 사람들에게 강요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뒤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파악해보면 결국 누군가의 더 많은 '돈', 이윤이 걸려있다.

비트코인과 같은 가상화폐가 과연 반드시 만족시켜야 할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기획된 것일까?

혹은 좀 더 거시적인 관점에서 인류 경제의 획기적인 발전을 위해 생산된 것일까?

사람들은 그저 한 '몫' 잡기 위해, 심지어 실체가 없는 무가치한 화폐로 비난하던

이들 조차도 비트코인에 투자한다. 그 중에는 이름만 대면 알만한 다국적 금융회사도 포함된다.


한편, 정작 기술 발전이 절실한 분야는 매우 더디게 진보한다.

세탁기는 아직도 빨래를 사람이 직접 넣고, 세제를 사다 넣고, 버튼을 누르고, 

빨래가 끝나길 기다렸다가 꺼내고, 옷을 직접 널어 말려야만 존재 목적을 달성한다.

아직도 설거지는 사람이 직접 해야만 그릇이 제대로 닦이고, 

집 먼지를 제대로 그리고 꾸준히 청소하려면 어마어마한 중노동을 평생 반복해야 한다.

아내가 가사노동을 하는 시간을 절반만 줄이고, 그 시간에 아이와 남편 그리고 제일 중요한 자기 자신에게

투자할 수 있다면 부부싸움과 갈등이 얼마나 줄 수 있을까?

그리고 그로 인한 사회 경제적 부가가치는 돈으로 환산했을때 얼마나 클 까?

우리는 여전히 암과 에이즈와 교통사고와 불치병으로 죽어가는 중이고

선천적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탓에 자신 및 주변 사람들에게 평생 고통을 주는 사람들을 

여전히 여기저기서 목격중이다.

정작 급한 문제는 그대로인데 쓸 데 없는 편리함만 늘어나는 모습이다.


마치 이 정도면 이미 배 부른데도 자꾸 더 떠먹이려고 할 때 느끼는 불쾌감, 

물론 이런 감정은 사람마다 그 기준이 다르겠지만, 

사회 구성원 다수가 이런 감정을 느낀다면 그 기술은 '사치' 기술임이 분명하다.

그런 기술을 시장이 알아서 판결(사람들이 구매하지 않음으로써)할 수도 있겠지만

적정 기술과 사치 기술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고 이를 소통할 수 있는 

플랫폼이 존재한다면 사치기술에 자원과 비용이 투자되는 일을 미리 막는 것이 가능하다.

크라우드 펀딩이 사치 기술은 거둬내고 가치 있는 기술,

거품 걷어낸 기술, 적정 기술을 기반으로 한 로켓을 쏘아올리는

발사 대 역할을 해 줄 것으로 기대된다.


사실 IT는 본래 사치기술이 아니었지만 점점 사치기술로 변하는 중이다.

IT기술이 인간에게 많은 편리함을 가져다준 좋은 기술임을 절대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앱스토어 혹은 구글 플레이스토어에 한번 방문해보면 IT 기술이 점점 '사치화' 됨을

절실히 느낄 수 있다.

온갖 종류의 불필요한 앱이 넘쳐 흐르는 가운데 오늘도 수많은 개발자들이

앱으로 대박을 터뜨리고자 뜬 구름 같은 수요를 찾아 헤매고(혹은 그런 수요를 만들기 위해 헤매고)

있다. 그런가하면, 랜섬웨어(특정 컴퓨터 데이터를 못 쓰게 만들고, 인질로 잡아 돈을 요구하는 프로그램) 변종

제로데이 공격(컴퓨터 운영체제의 취약점을 발견해도 일부러 공개하지 않고 있다가 해킹 등 범죄에 악용하는 공격방식)등은

여전히 우리 삶을 위협하고 있다.


이 글에서 주장하는 바는 우리가 좀 더 진지해졌으면, 그리고 사유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우리가 사고, 쓰고, 버리는 제품과 우리가 즐기는 서비스에 대해 생각해봐야 한다.

회사에서 마케팅 과정을 경험해본 사람이 있는가?

고객은 철저히 공략당할 '대상', 즉 Target 취급 당한다.

고객은 곧 적이고, 고객의 마음은 무너뜨려야 할 관문이며, 돈 주머니이다. 

이 프레임을 벗어난 기업은 그리 많지 않은데

걔 중에는 큰 성공을 거두었다가

기업이 거대화하면서 '규모의 법칙'(기업이 거대해지면 반드시 발생하는 시스템적 문제)

이 발동해 다시 이 프레임으로 회귀하는 기업도 있다.

마치 통계학의 대수의 법칙마냥 작동하는 악명높은 이 법칙은 

또 다른 글에서 다뤄야 할 것이다.


광고를 볼 때 가치에 대해 한번 쯤 고민하는 것 만으로도 성공이다.

내 삶에서 정말 가치있는 것은 무엇인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나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끼칠 영향력도 생각해 이를 실천하는 소비자 겸 생산자가 된다면

분명한, 가시적인 변화가 어떤 형태로든 언젠가는 찾아올 것이다.

크라우드 펀딩과 공유경제가 이 변화의 바람을 대표하는데, 

이 시스템이 과연 어디까지 성숙하고 발전할지 좀 더 지켜봐야 한다.

미국 Amish처럼 현대 문명을 등지고 종교적 원칙을 따라 화장도 못하는 

그런 삶을 살지 않더라도 우리는 기술을 '꼭' 필요한 데 사용함으로써 '가치'와 '사람'이 

우선시되는 문명을 위해 헌신할 수 있다.

자원의 적정한 배분, 공존의 중요성과 원리를 깨닫는 사람들로

가득찬 우리사회를 기대한다.

크고 시스템적인 문제는 작고 유기적인 변화로 풀어야 하는 법이다.



덧글

댓글 입력 영역